인세인 박: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그리고 미디어를 위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들과 그 변형, 복제, 수집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인세인 박(Insane Park: 가명)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현 세대가 겪고 있는 문화적 경험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그려내기 위해 두 개의 전혀 다른 전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와 《그림을 그립시다》를 선보인다.
두 개의 전시 중 첫 번째 전시인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에서는 인터넷에 부유하는 밈(meme)과 짤들을 미술의 맥락으로 가지고 들어 온 영상 작품들이 설치된다. 짧게는 20여초로 만들어진 짤막한 영상들은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이모티콘이나 GIF의 움짤(움직이는 사진)으로 담아내는 현세대의 소통방식을 참조하고 있다. 인세인 박은 작업을 통해 밈이나 움짤이 맥락과는 관계 없이 무분별하게 복제되고 기하급수적으로 배포되며 사회적 경향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포착해낸다. 이러한 과정은 미디어를 통해 분출, 확산되는 개인의 욕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산업들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 구조와의 대면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개인전의 두 번째 파트인 《그림을 그립시다》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 화가 밥 로스(Bob Ross)의 유명한 TV 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 (Joy of Painting)"에 착안해 미술작품의 시장 가치 형성 과정을 희화화한다. 작가는 밥 로스의 수업 장면을 빌어 한국 추상 미술 작품을 쉽게 그려 작가가 되는 방법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밥 로스의 수업을 차용한 영상과 그의 수업을 모방하며 만들어진 작품들이 걸린 전시장에서는 미술 창작과 미술시장의 메커니즘이 밈의 언어를 통해 투사되고 있는 지점을 반추할 수 있다. 이는, 현대 미술 시장과 자본주의 체제 속 예술의 역할에 대해 던지는 인세인 박의 끈질긴 질문의 방식이기도 하다.
인세인 박은 이번 신작들을 위해 지나간 시대의 팝컬처(pop culture)와 넷상의 언어를 미술의 장치로 삼아 참조된 의미들을 전시장으로 불러낸다. GIF나 짤의 조각들로 흩어져 있는 이 의미의 조각들은 과거를 모방하고 복제함으로써 상황을 풍자하는 현세대의 납작한 표현방식과 중첩되어 우리 사회가 당면해 있는 모순과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 숨어있는 노래, 이미지, 문구를 좌표로 삼아 재미와 혐오, 염원과 욕망, 상품과 쓰레기, 예술과 밈이 공존하는 현실을 이야기 하며, 동시에 이를 순간적으로 소비해 버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인세인 박(b. 1980)은 2013년 에트로 미술상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가벼운 듯한 접근으로 우리가 직면한 사회의 이슈들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직관적이고 자극적으로 이야기 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발적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그의 영상 작업들은 유튜브나 Vimeo와 같은 비디오 플랫폼에서 영구적으로 차단당하기도 하는 등의 이슈를 겪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에서 Sexhibition 이라는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았고, 2017년 파주 메이크샵 아트 스페이스, 2014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12년 광주 영은미술관 등 국내 다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17년 경남도립미술관, 2016년 사비나미술관, 2015년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2015년 경기창작센터, 2011-2013년간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