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
몸의 사유
소마미술관
2012. 10. 5 - 12. 16
참여작가 권오상_김기라_김준_데비 한_문성원_변웅필육근병_이동재_이병호_이용백_이형구_최수앙>나는 나의 몸인가, 아니면 나의 정신인가? 몸은 인간의 존재 근거이며 사유의 뿌리이다. 서구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몸은 철학적 사유를 가로막는 부정적인 장애물로 취급되었으나 이제 다양한 담론을 거쳐 사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을 정신에서 찾으려는 서구 철학의 전통은 몸의 능동적인 활동을 생물학적 기능으로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었고 몸과 정신을 분리하여 몸의 작동을 정신을 통해 해명하고자 하였다. '몸은 영혼이 극복해내야 할 감옥'이고 '불멸의 영혼을 담는 일회적 그릇'에 불과할 뿐이라며 정신의 우위론을 내세웠던 플라톤을 위시하여, 이후 전통 철학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몸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소유되는 대상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고해왔던 서구 철학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육체에 관한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육체와 정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고 만물의 존재를 기(氣)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감각을 통해 세계를 느끼는 '육(肉)', 즉 '살'을 서구에서는 분석하고 체계화해야 할 물질적 대상으로 보았던 반면 동양에서 '육(肉)'은 기(氣)가 만들어 낸 것이며 기(氣)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마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파악했다.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에 와서야 특히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가 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정신의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지각의 주체를 몸으로 보는 획기적 개념을 내놓았다. 인간의 경험이 기본적으로 신체적 활동으로부터 직접 발생하며, 철학적 사유라는 정신 작용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조건이자 모든 정신적 작용을 제약하는 근거가 바로 몸이라는 것이다.● 몸은 의식 외부의 대상이 아니다. 몸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의 대상이 주어진다. - 메를로-퐁티 '체(體)', 즉 '틀'로서의 육체의 문제는 프로이드에 이르러서야 정신분석학을 통해 상당히 파괴력 있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정신분석학이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으며 히스테리의 어원(hustera)이 자궁을 뜻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프로이드는 히스테리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증상이 심리적 문제의 발현이고 무의식 안에서 억압된 욕망의 존재를 밝혀내는 과정에 '틀'로서의 육체가 자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이 해부학적 성차이의 인지에서 발생하며 남성의 성기인 페니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살'이 가진 감각이나 기능이 아니라 '틀'이 가진 형상이 육체의 사회적 의미를 만드는 주요한 요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라캉(Jacques Lacan)은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현실의 '틀'이었던 페니스에 남근(phallus)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서 '틀'이 기호나 상징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제공했고 육체가 물질성을 넘어서 기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푸코의 권력 개념, 즉 '권력이 개개인의 행위를 지배함으로써 그들을 종속시키는 방식'에 의해 몸이 특정하게 주조된다는 연계성도 간과할 수 없다. 푸코는 권력이 지문 날인, CCTV, 인체 스캐너 등을 통해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미시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생체권력(bio-power)'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때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상으로 파악된다. 반면, 1991년 보드리야르 (J. Baudrillard)는 현대사회에서 몸이 영혼을 대신해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생산보다 소비가 더 중요해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연결된 몸은 현대에서 자아 정체성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제작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보인다.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몸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암묵적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신포도류의 비난을 감수하며 수용하는 인간의 생존전략이 되어있다.● 본 전시는 이러한 몸에 관한 인문학적, 철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사유의 방식을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다양하게 시각화한 12명 작가들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 박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