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광채

'화이트 큐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시장은 어두웠다. 암실을 연상케 하는, 굳이 따지자면 '블랙 앤 화이트 큐브'에 가까웠다. 바닥과 천장은 모두 검은색이었고, 흰색인 벽에는 책에 띠지를 두른 것처럼 하단을 검은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전시장뿐만 아니라 출품작 모두 흑백이었기에 전시 전경을 아무리 컬러로 촬영해도 흑백사진처럼 보일 듯했다. 흑과 백이 대비되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전시장은 그 자체로도 흑백사진과 다를 바 없었다. 그곳에서 부분 조명을 비춘 액자는 네거티브 필름에 침전된 은입자처럼 찬연하게 반짝거렸다. 발걸음을 옮길 떄마다 흑백사진으로 들어가 이미지의 일부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2025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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