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불연속연속

손영옥, 국민일보, 10 September 2025

전시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들이다. 검은 심연 위에 떠 있어 더 창백한 손들이다. 어떤 손에는 타다 남은 성냥개비가 얹혀 있거나 타다 만 종이가 끼워져 있고, 어떤 손에는 붉은 실, 초록 실이 사연처럼 걸쳐 있다. 전통 안료를 사용해 피부의 솜털까지 선명한 극사실 기법으로 그려졌지만, 이런 알레고리 덕분에 그림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흑단처럼 검은 안료를 사용하는 일명 ‘블랙 페인팅’으로 유명한 이진주(45) 작가의 개인전 ‘불연속연속’이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8년 만의 개인전으로, 초현실적인 성격이 전보다 강해졌다. 즉 인물과 스토리가 더해지며 초현실성이 점층하듯 고조된다. ‘오목한 눈물’에서는 개울에서 겉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낸 여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나무는 헐벗었고, 주변엔 흰 눈이 쌓여 있다. 나무에 걸린 배구장 네트. 허공에 매달린 비닐 봉투, 쓰러져 누운 돼지의 살덩이 등 맥락 없는 이미지들이 꿈속처럼 뒤엉켜있다. ‘볼록한 용기’에서는 검은 우주에 유성처럼 떠 있는 돌 위에 나체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모든 것들이 상식적인 풍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