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난 최병소는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신문지 위의 텍스트를 볼펜 및 연필로 지우는 수행적 행위를 통하여 질료의 물성을 바꾸어 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최병소가 작품에 신문지와 볼펜, 연필이라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은 그의 작품활동 초기부터 돋보인 특유의 실험정신의 발현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화면 위에서 행해지는 수행적이고도 반복적인 행위를 통하여, 삶으로부터 건져 올린 재료 저마다의 성질은 기존의 정체성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물성으로 재창조된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최병소의 작품세계는 특수한 위치를 지닌다. 우선 작업 과정의 측면에서 정신성과 행위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시각적 결과물이 단색조 화면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주류 경향이던 단색화 기조와 접점을 지니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도 당대 단색화 경향 작가들이 참여한 주요 전시 중 동경 센트럴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의 단면》(1977)展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에꼴 드 서울》(1976-1979),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2012) 등에 출품한 바 그들과 활동의 궤를 공유하기도 했다. 다만 최병소를 단색화가 중 하나로 분류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신문지 작업 이전에 선보인 초기 작업들, 예컨대 철심 여러 개를 바닥에 놓고 하나만 매다는 작업, 전시 공간에서 고등어를 썩히는 작업, 사진을 텍스트로 읽어나가는 작업 등에서는 1960-70년대 발전한 한국 실험미술이 보인 특유의 도전적 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일례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연 개인전에 선보인 (1975)는 내셔널 지오그래피 잡지에 수록된 새 두 마리가 있는 사진을 재료 삼은 작업이다. ‘sky’, ‘cloud‘, ‘wind’, ‘birds’, ‘flying’, ‘meeting’ 등 여섯 영단어를 사진과 병치시켜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호작용을 고찰하는 진보적 시도를 보여준다.

 

최병소는 1974년 박현기, 이강소 등과 《한국 실험작가》展에 참여하였으며,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역으로서 5년 간 활동하였다. 《대구현대미술제》 는 1974년 계명대에서 시작된 국내 최초 현대미술제로, 1979년까지 다섯 차례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되었으며 한국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의 거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최병소, 이강소, 박현기, 김기동 등이 창립멤버로 활동하였다. 구상과 추상의 갈등 속에서 추상미술이 미처 뿌리가 내리기 전에 이벤트, 전위, 비디오 미술 전반을 수용하고 나서 한국화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최병소는 한국 전위미술의 전개를 선도한 동인 ’35/128’에 몸 담기도 했다. 대구의 위도와 경도를 의미하는 ‘35/128’은 1975년 최병소, 강호은, 김기동, 김인환, 이명미, 이묘천, 이황미, 황태갑, 황연옥 등이 만든 전위미술단체로 《대구현대미술제》 의 주역이었던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발족시킨 그룹이다. 평론가 이일은 1975년 전시 서문에서 “나는 이 그룹이 내 건 분명한 앙데팡당 정신, ‘안티-파워’의 신념, 그리고 일종의 전환의 의지 등, 우리나라 현대미술이 처해 있는 가장 현실적인 요청에 대응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35/128’ 호에 대해 나는 큰 기대를 안겨 보낸다”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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