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 실버: Solo Exhibition
구지윤(b. 1982)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서울의 도시 풍경으로부터 추출한 인상과 정서를 추상회화의 언어로 번안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끝없이 솟아나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속성에 생물학적 유기체의 모습을 투영하여 본다.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유기적 존재들처럼 언젠가 기억 속에만 남게 될 도시의 운명을 연민하는 것이다. 구지윤이 바라보는 서울은 회색과 은빛 주조의 풍경이자, 켜켜이 중첩된 시간의 지층을 품은 회화적 대상이다. 은빛은 무채색의 본질에 기반하지만, 주위의 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는 성질을 지녀 무광의 회색과 전혀 다른 종류의 정서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빛깔이다. 회색이 도심 속 오래되어 사라지는 것들 위에 덧씌워진 고층 건물의 표면을 떠올리도록 한다면, 반짝이는 은빛은 한강 위 물비늘이 품은 무언의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도시의 은빛은 구지윤에게 있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지워진 것과 남겨진 것 사이를 떠도는 빛”이다.
전시명인 《실버》는 주제로서의 도시와 매체로서의 회화 양측에 내재한 ‘빛’과 ‘시간’을 동시에 상징한다. ‘실버’는 대상의 표면에 맞닿은 빛을 반사하여 보는 자에게 되돌려주는 매개체이자 투영체이다. 그것은 은빛 자체를 지시하는 단어라기보다, 모든 색에 ‘빛’과 ‘시간’의 속성이 내재하여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상징이다. 회화의 화면 위에 중첩된 다양한 색들은 제각기 다른 파장을 지닌 빛의 편린이다. 서로 다른 물리적 성질에 의하여 반사된 빛은 우리의 시각 체계에 의하여 때로 찬란한 유채색으로, 또는 고요한 무채색으로 포착된다. 대상을 경유하여 색으로 되돌아온 빛은 보는 자의 감정과 정서에 관여하는 심미적 요소로서 거듭난다. 빛깔로서의 ‘실버’를 포함하여, 모든 색을 시지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하여서는 반사체로서의 대상이 머금은 빛을 다시금 풍경에 되돌려주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시간은 구지윤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중심 개념이다. 그는 물감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붓의 움직임에 도시의 시간성을 투영한다. 색이 쌓이고 묻히기를 거듭하는 회화의 과정 속에서, 화면은 “시간이 스며든 장(場)”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구지윤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후 2007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 순수미술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0년 미국 뉴욕대학교 스튜디오아트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025; 2021), 갤러리퍼플(2022),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18),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2016)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2024), 뉴스프링프로젝트(2024),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024; 2021), 아라리오갤러리 천안(2021; 2020), 두산갤러리 서울(2019; 2014), 소다미술관(2019), 하이트컬렉션(2018), 자하미술관(2018; 2015), 두산갤러리 뉴욕(2010) 등의 기관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아라리오뮤지엄, 한국은행 등의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