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Hyungkoo: The Gaze

5 June - 26 August 2007 Cheonan
Overview

강형구에게 있어서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의 개인전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가 수십 년 동안 홀로 다양하게 연구해온 자화상, 초상화, 캐리커처, 조각상등의 작품들을 총망라하는 전시가 될 것이며 앞으로 그가 또 다른 작업여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이제 분진가루가 가득한 그의 작업실에서 세상으로 나와 관람객들을 응시할 준비를 마쳤다.

Press release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자연 혹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사진이 없던 시대에는 회화만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어느 대상의 순간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 발명되기 전의 시대를 살던 부호나 왕족, 귀족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에는 초상화의 자리를 사진관의 인물사진들이 대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이 인물을 정확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초상화의 강박관념을 해방시켜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현대 미술의 초상화들은 단순히 인물이 가진 인상의 정확한 묘사 차원을 넘어서서 다른 의미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소통하고 있다.

강형구는 20여 년 동안 2미터 높이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에 사람의 얼굴만을 그려왔다. 그의 얼굴 연작에서는 특정한 상황이나 배경이 드러나지 않고 사람의 얼굴만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강형구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관람자는 작품 속 얼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재 사람을 마주할 때처럼 서로를 응시하는 현상이 강형구의 작품과 마주할 때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서로 말없이 오랫동안 응시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강형구의 작품에서는 낯선 사람과의 오랜 응시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과 의사소통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의 응시는 상호교감적인 반응이며 이는 작품의 인물과 관람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관람객 개개인에게 다양한 경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강형구는 왜 얼굴에 집착할까? 그의 수많은 얼굴 회화 작품을 대했을 때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얼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 안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지은 표정 하나 하나가 모여 주름을 만들고 그렇게 형성된 주름 한 줄 한 줄이 그 사람의 얼굴 인상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람의 성품, 내심까지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마주할 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대부분 상대방의 얼굴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통해서 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되고, 우리의 감정 역시 그의 인상에 따라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강형구의 작품 속 인물의 표정은 항상 무표정이다. 감정의 기복으로 인해 달라지는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내면을 읽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배제시키기 위함이다. 사람이 무표정할 때 가장 중립적인 면에서 그 사람의 평소 내면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강형구는 무표정한 얼굴의 초상을 통해 관람자가 그 인물의 내심뿐만 아니라 그의 삶까지 읽기를 바라는 것이다.

강형구가 그리는 얼굴은 크게 세가지-자화상, 유명인, 그리고 불특정 다수로 나뉜다. 그는 오랜 공백 기간에서 돌아와 다시 작업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자화상 연작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화상들은 그의 얼굴 연작들을 정립해나가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을지 모른다. 자신의 얼굴에 담긴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작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이러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서 관람객들과 조우하고 교감하려 하고 있다. 자화상 이후로 강형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 영화배우, 예술가 등 많은 유명인들을 그렸다. 대표적으로 마릴린 먼로, 에이브라함 링컨, 앤디 워홀 등이 있다. 관람객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자신이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유명인들을 강형구의 얼굴 연작을 통해서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할머니가 된 마릴린 먼로를 상상해서 그린 작품은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전달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범하지만 묘사함에 있어 강한 인상을 남기는 흑인아이라든지 늙어서 주름이 가득한 노친의 얼굴 등을 그렸다. 이렇게 강형구의 다양한 얼굴들은 우리에게 마치 새로운 만남과 교감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강형구의 얼굴회화 연작들은 현대 리얼리즘기법의 대표 작가인 척 클로스(Chuck Close)의 작품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1960년대 이후 사진보다 더 실사 같이 사람의 얼굴을 극 사실기법으로 표현한 척 클로스는 사람의 얼굴을 확대해서 대형 캔버스에 세밀히 묘사한다는 점에서 강형구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척 클로스가 "내 그림의 주된 목표는 사진적 정보를 그림의 정보로 번역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그는 사진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의 극대화를 위해 작업했으며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 사실적 묘사에 충실했다. 이에 반해서 강형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사진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이 아닌 자신만의 색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테면 화면의 강한 색감 사용을 통해서 형태나 이미지보다는 색채를 먼저 드러나게 하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 눈을 강조하고, 얼굴의 주름 등을 과장하여 실재 인물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러한 왜곡을 통해서 그는 사진이 가진 인물의 재현을 넘어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강형구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화단에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의 자화상에 나타난 삶의 흔적들은 어떠했을까? 강형구는 정직한 구상화만이 오로지 각광받던 70년대에 미대에 진학하여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극 사실화의 대가인 척 클로스, 살바도르 달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영향을 받아 재학시절에도 인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사진을 묘사하는 작업에만 국한되는 것을 넘어서 그러한 명작들을 그대로 재현한 후 변형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예를 들어 밀레의 이삭줍기 작품을 큰 캔버스에 확대해서 그린 후 이삭을 돈으로 변형해서 그려서 결국 돈을 줍는 여인네를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작품과 함께 동전 주화를 작품의 오브제로 이용한 작품이라든지 평범하지 않은 설치작품 등을 병행하며 강형구는 점점 아카데믹한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이단아로 눈밖에 나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에도 화단에 등단하기가 평탄치 않았다. 소수의 유명한 공모전이 유일무이한 작가로의 등단 기회였던 그 시대에는 그의 시대를 앞선 작품들은 이러한 경로를 걷기에 무난한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 그는 평범한 회사원, 갤러리 운영자를 거쳐 현재 그의 대형 얼굴 회화를 보여주기 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는 그가 화랑경영을 그만둔 직후 1992년이다. 현재의 분당 작업실로 이주한 후 그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꾸준히 작업만을 강행해왔다. 그러한 그의 끊임 없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지금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자화상 50여 점을 포함해 그가 제작한 작품은 20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마친 강형구는 첫 개인전 이후 매해 200호를 빼곡히 채운 인물 페인팅 수십 점을 제작하여 대형 전시장을 가득 매운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강형구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명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철저한 검증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하루 세 네 시간의 짧은 수면을 취하면서 몇 달씩 작업실에서 작품에만 몰두하는 그는 하루 스물네 시간이 짧다고 말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업에 몰두한 그이기에 지난 시간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노동집약적인 순수회화 작품만을 그것도 대형캔버스로만 작업하는 그는 작가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그의 작업실은 에어브러시에서 분사된 물감의 분진가루가 온 바닥과 가구, 선반, 그리고 환풍기까지 빼곡히 덮여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도구들이 전시장 한 공간에 설치되어 그가 근 20년을 고군분투해온 작업실의 정황을 잘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그의 끈임 없는 노력이 낳은 것은 제작과정에서의 테크닉적 우월함이다. 얼굴을 묘사함에 있어 그는 에어스프레이를 이용해 피부의 매끄러움을 먼저 표현하고 그 물감이 마르기 전 면봉이나 붓을 사용해서 살갗의 미묘한 잔주름, 솜털, 땀구멍까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때 놀라운 것은 유화를 이용하면서도 기존 유화 자화상과 달리 강형구의 회화는 몇 번 덧칠한 수채화 같은 맑은 느낌을 주면서도 너무나도 정교한 주름이나 잔털까지 밀도 있는 묘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수십 번을 칠해서 캔버스의 밑 색이 위에 덧칠한 색감과 어우러져 깊은 색감을 내는 유화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수정이 용이하며 완성 시까지 여러 번 고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강형구는 이러한 유화의 수정의 용이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그가 습득한 일필휘지화법으로 큰 화폭을 거침없이 빠른 시간 안에 채운다. 그는 작업시간을 단축하려고 자신의 오른손을 몸과 함께 묶고 왼손만을 사용해 결국 양손잡이로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주머니 속에 항상 오목렌즈를 겸비해 작품제작 시 먼 거리에서 작품 감상을 함으로써 전체적인 묘사나 색감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그가 많은 작품을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에 걸친 그의 끈기 있는 노력의 결실이다.

강형구에게 흔히 50이 훨씬 넘은 나이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중견작가’라는 타이틀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갖는 작업의 추진력과 열정은 요즈음 젊은 작가들을 앞서간다. 그는 아직도 물감의 분진가루가 날리는 작업실에서 새로운 표현기법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다. 그는 화풍이 하나로 정립되어 변화가 없다는 것은 작가의 불행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는 얼굴이라는 큰 소재에 빠져 연구해왔지만 언제든지 다른 소재로서 변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에게 언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아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그는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그 작품 속의 인물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작품에서 손을 땐다고 말했다. ‘응시’의 과정은 결국 그의 작품의 마지막 관람의 단계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강형구에게 있어서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의 개인전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가 수십 년 동안 홀로 다양하게 연구해온 자화상, 초상화, 캐리커처, 조각상등의 작품들을 총망라하는 전시가 될 것이며 앞으로 그가 또 다른 작업여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이제 분진가루가 가득한 그의 작업실에서 세상으로 나와 관람객들을 응시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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