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주: 권오상, 김인배, 이동욱: RYSE HOTEL

20 December 2018 - 3 March 2019 Seoul
Press release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l 라이즈호텔은 12월 20일부터 2019년 3월 3일까지 조각가 권오상(1974- ), 김인배(1978- ), 이동욱(1976- ) 3인이 참여하는 그룹전 《무한주 Endless Column》를 개최한다. 이 3인의 조각가들은 두드러지게 정통 조각의 노선에서 벗어나 조각 언어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매체 적용이나 시지각적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던 작가들에 해당한다. 본 전시는 이제는 중견 조각가의 자리에 들어선 이들의 근작을 '무한'의 역설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이다. 전시명은 의도적으로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에서 시작해 현대 조각의 정신적 모체가 된 “무한주”로 명명함으로써, 비단 이 3인에 한정된 논의가 아닌 '무한'에 대한 현대 조각가들의 로망과 집념이 만들어내는 역설, 그리고 그 역설에 인해 파생되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한은 ‘완전히 없음’의 개념과 함께 인간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이다. 무한성의 매력은 아마도 헤아릴 수 없는 수를 헤아리려는 기묘함에 있는 듯 하다. 인간의 시지각과 의식을 넘어서는 무한성은 전통적으로 숭고함을 논하는 개념이면서, 한편으로는 경계허물기와 새로운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무한성은 ‘역설’적 논증 방식을 통해 수많은 가능성으로 파생되고 두려움으로 노출된다. 제논(Zeno)의 거북이와 아킬레우스 경주의 예처럼, 역설은 터무니없고 모순적인 결과를 내놓지만 참인 논증을 일컫는다. 예술의 영역에서 이 무한의 역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일상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지점을 헤아리려는 시도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마법의 언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3인의 조각가들도 유한한 수단이 만들어낸 무한의 상징들이 조각 공간에서 어떠한 방식과 양상으로 전이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조각이 창조하는 공간에서 발현되는 무한성의 예술적 의미를 규명하려 한다.

 

조각의 범주를 다양한 작업 시리즈를 통해 재정의해온 권오상 작가는 금번 전시에서 매스패턴스, 릴리프, 모빌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인다. 모빌 작업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의 모빌과 서커스 작품에 대한 권오상 식 오마주이자 유희로, 조각의 주 요소인 양감에서 해방시킨 얇은 판형 조각들을 좌대에서마저 해방시켜 허공을 점유하도록 유도한 작품이다. 모빌의 사이즈를 크게 확대해 관람객들이 직접 걸어다니며 근거리에서 경험토록 함으로써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로서의 조각적 재정의를 시도한다. 릴리프 시리즈는 원래는 작품이 될 수 없는 네거티브 나무 판형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후, 그 위에 포지티브 판형을 면처럼 쌓아 올려 양감을 준 릴리프 작품을 배치해 무한과 유한의 경계를 사유한다. 마지막으로 매스패턴스 시리즈는 브랑쿠시 좌대를 사진 조각으로 제작해 결국 좌대는 작품이 되고 이는 다시 실 좌대 위에 올라가게 배치함으로써, 2차원적 사진매체에서 시작해 상하 좌우의 3차원적 확장을 거치며 관습의 파괴와 모순적 배치로 점철되는 권오상식 조각적 무한성을 구현한다.

 

이동욱 작가의 작품은 3인 작가 중 가장 일상과 현실에 맞닿아 있다. 매체 선정이나 표현의 방식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의 취향에 많은 부분 기대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에 대한 진지한 관찰이거나 현실에 대한 고발이나 비판인 경우가 잦다. 은근 시니컬하고 냉정한 시선은 이동욱 식 유머스럽고 재치 넘치는 표현 방식을 통해 부드럽게 관람객에게 전달되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진지하고 무겁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난 십여 년간 선보인 여러 스타일들이나 방법론들이 총 망라된 여러 근작들을 선보인다. 스컬피로 만든 인간 형상, 트로피, 수집된 돌들과 기타 작가의 수집물들 사이에 섬세하게 배치되는 인간의 형상이나 잔재, 흔적 등이 한꺼번에 버무려진 조합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과 사회라는 분리 불가능한 두 관계 속에서 파생될 수 밖에 없는 소외, 균형, 분열, 고립 등에 대한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는 화두를 언제나 그래왔듯 잔잔히 짚어낸다.

 

김인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특유의 시선의 축을 흔들거나 교란시키는 작업을 선보이는 데, 그 중에서도 ‘개수’에 대한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한다. 우선 이번에 설치되는 작품 <개수>는 어쩌면 두 개일지도 모를 크게 부푼 몸통과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의 두상, 그리고 <2의 모각>은 서로가 서로를 모방한 듯한 두 개의 두상이 각각의 한 쌍의 다리와 연결된 태생적으로 불확정적인 존재를 통해 개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 전작 <섬광 속의 섬광> 이 더해져 개수에 강박된 구성과 배치로 관람객들을 작가가 치밀하게 짠 덫에 빠져들게 한다. 김인배 작가가 만들어내는 피조물들은 항상 전통 조각에서 중요시 여기는 양감과 공간 창조의 적자인 듯 보이지만, 실은 게임의 규칙에서 언제나 조금씩 비켜선 채 존재하는 이들이다. 그가 제시하는 터무니없고 불친절한 덩어리들은 내재적으로 점, 선, 면 등 여러 요소와 차원, 그리고 다양한 시선으로 촘촘히 배분된 채, 마치 제논의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의 역설처럼 육체적 시도로 도출해낼 수는 있지만 논증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무한의 역설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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