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 RYSE HOTEL

19 July - 7 October 2018 Seoul
Press release

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호텔은 개관 두 번째 전시로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 중국작가 주 시앙민, 그리고 한국작가 백경호, 심래정이 참여하는 아시아작가 그룹전 <시차적응법 JET LAGGED>을 개최한다.

 

삶은 특정 대상과의 끝없는 대면, 이해, 다툼 그리고 조율의 미로 속을 헤매거나 새 좌표를 설계해 나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 대상은 특정 인물일 수도 있지만, 사회 구조가 되거나 혹은 목표이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 대상들과의 관계는 태생적 온도차로 인해 끊임없이 미끄러질 수 밖에 없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항상 그 차이에 적응하거나 조율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전시 <시차적응법 JET LAGGED>은 그 간극들이 만들어내는 시차에 대항해 다양한 시각 언어로 스스로의 좌표를 설계하고 적응해 나가는 4인의 작가로 구성된 전시이다.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b.1976)는 오랜 식민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인도네시아 특유의 복잡한 문화적 풍경과 부조리한 사회역사적 구조, 그리고 피식민인으로서의 애환과 그 경계공간에서의 생존과 적응에의 고민을 비단 인도네시아적 층위가 아닌 범세계적 맥락에서 짚어내고 이를 설치작품과 영상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신체 없는 형상들의 대열과 이들이 치는 영혼없는 기계적 박수, 연주하는 이 없지만 혼자 움직이는 드럼, 그리고 식민 지배의 잔재이자 상징인 샹들리에 등의 배치는 오랜 식민 문화에서 형성된 벗어날 수 없는 정체성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좌절과 투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 작가 주 시앙민(b.1989)은 정치경제적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중국 동시대 젊은이의 모습과 행태, 그리고 그들의 감정 상태나 심리적 불안감을 회화라는 특정 매체를 통해 포착하고 사유하는 데 주력한다. 예를 들어, 몸에 문신을 한 젊은이들의 형상을 느리고 나태하게 표현하는 반면, 권투하는 젊은이들은 마치 너무 빠르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은유하듯 속도감 있고 거칠게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의도가 매체를 통해 극대화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비단 표현수단로서의 회화가 아닌 총체적인 감각의 장으로서의 회화를 강조하고, 회화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회화로의 탐닉이나 매체적 이상 구현을 위한 여러 조형적 시도들이 이끄는 시지각적 유희는 한국 작가 백경호(b.1984)의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강점이다. 백경호 작가는 회화라는 큰 구조 속에서 이미지나 색채들을 거침없이 배치하고 두서없이 표출함으로써 이미지의 조형적 가능성과 유희성의 한계를 끝없이 탐문하고 확장한다. 분절된 동그라미와 네모틀의 간단 조합이 만드는 윤곽은 천사 혹은 인간이라는 구상적 형상을 보는 즉시 명확히 제시하지만, 그 윤곽선 내부를 가득 채운 색채나 질감들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어지럽다. 그 즉각적 대비는 추상과 구상, 표출과 자제, 자유와 규율 등의 경계로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이끈다. 백경호 작가의 작품이 화려함과 스펙타클의 향연 속 묘한 자제의 미덕을 보여준다면, 작가 심래정은 그 반대선상에 서 있다. 작가 심래정(b.1983)은 인간의 원초적 내면 고백이나 태생적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극한의 강박과 집착을 검거나 흰, 대척점에 있는 두 색에 기댄 무겁고 음습한 기운의 드로잉, 그리고 강박적으로 수십 수백장씩 그려낸 드로잉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여과없이 분출한다. 큰 맥락에서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불안에 잠식된 구체적 서사 구조에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잠식된 영혼의 서사는 곧 조각조각 불규칙적으로 파편화되어 거침없이 흩어지고, 결국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에의 어설픈 시도나 갈망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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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