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관을 아울러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김인배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2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김인배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없음의 감각을 조각의 방법론으로 다룬 신작 29여 점을 선보인다. 조르주 페렉의 소설 『잠자는 남자』에서 출발하는 이번 작업들은 대상을 포착하려는 시선과 실제 존재 사이의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조명한다. 소설 속 화자가를 집요하게 관찰하지만 끝내 온전히 포착하지 못하듯, 김인배는 대상을 하나의 형태와 의미로 규정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미세한 어긋남에 주목한다. 그는 지시하는 말과 대상 사이의 틈을 입체화하며,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눈앞에 분명히 드러난 형태 너머, 그 사이에 존재하는없음의 감각을 각 층의 독자적인 조각적 행위를 통해 선보인다.

 

1층 전시장은 조르주 페렉 소설 속 화자와 주인공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심리적 거리감을 조각적 행위로 치환한 공간이다. 김인배는 대상을 규정하려 할수록 멀어지는 간극을 다루기 위해, 시각이 철저히 차단된 가상의 상황을 설정했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상자 안에 두 손만 넣고 오직 감각에 의존해 조각을 빚어내는 상황을 상상하고 이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보지 않고 빚어낸 덩어리들은 짓눌리거나 목이 길게 삐뚤어진 토르소, 엉뚱하게 묘사된 곱슬머리 두상 등 형태적 오류를 동반하지만, 김인배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은 상상적 궤적과 행위의 과정 그 자체에 주목한다. 공간 곳곳에는 일종의 감각 기관처럼 공간을 내려다보는 〈쥐고 펴고〉(2026), 물리적인 거리감과 크기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조각 〈큰 동작1, 2(2026) 등 낯선 감각을 확장하는 작업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지하 전시장은 소실점과 원근법 개념을 차용하여, 시각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가상의 지점을 노골적인 '만지기'의 행위로 끌어당긴다. 닿을 수 없는 소실점의 끝을 물리적으로 잘라내어 보여주는 〈A형 사다리〉(2026), 1밀리미터의 틈도 없는 완벽한 밀착을 통해 원근의 환영을 빚어내는 〈원근법 만지기〉(2026)는 거리를 두어야만 성립하는 원근법을 역설적으로 거리를 없애고 만지는 행위로 구현해 냈다. 또한 다면체의 뼈대 위에 오일 스틱을 문질러 공기원근법을 3차원으로 구현한 〈빛기둥〉(2026) 역시 시각적 거리를 촉각적 물성으로 환원한다. 안팎이 서로를 모사하지만 끝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부조의 형태로 소조해 낸 〈이중모사〉(2026)는 대상을 포개려 애쓰지만 온전히 닿을 수 없는 소설 속 간극을 조각적 실천으로 선보인다.

 

3층 전시 공간은 도로 위의 점선을 모티프로 삼아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해체하고 가상의 선을 실재화한다. 도로 중앙의 점선은 달리는 차들을 구분하면서도 언제든 넘나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성질을 지닌다. 김인배는 이 개념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왔다. 실제 차선 위에 유토를 엎고 발로 밟아 아스팔트의 거친 물성을 탁본 뜨듯 캐스팅한 〈노란 점선〉(2026)은 일직선상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선다. 조각의 배열은 3층 유일의 가벽 구조가 지닌 거대한 물리적 장벽을 완전히 무시한 채, 벽을 관통하여 본래의 궤적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가벽이 지닌 물리적 경계가 김인배가 시도하는 가상적 선 긋기를 통해 무력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흰 가벽 아래쪽을 굵게 두른 검은 선이 공간의 상하를 분리하며, 공간 자체가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착시를 유발함과 동시에 일종의 기준선 역할을 수행한다.

 

4층 전시 공간은 조르주 페렉의 자전적 소설이 품고 있는 어긋남의 감각을 관계의 층위로 끌어와 실체화한다. '같은 외모를 지닌 두 남자'가 동일한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 대화하는 내레이션에서 출발한 〈같은 그림〉(2026), 완벽한 일치를 전제한 시도가 역설적으로 간극을 빚어냄을 보여준다. 앞선 소통의 과정은 3차원의 조각적 행위로 끌어와 두 사람이 함께 흙을 썰어내는 〈흙 썰기 조각〉(2026)으로 이어진다. 똑같은 형태를 도출하려 애썼음에도 단면은 차이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남겨진 물리적 두께가 부피가 되어 그 궤적은 새로운 3차원의 결과물로 탄생하게 된다.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서로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은 시간의 흔적들은, 소설 속 끝내 포개지지 않던 화자와 주인공의 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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