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욱: 칠하다

27 October - 7 December 2016 Seoul
Press release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10월27일부터 12월 4일까지 허명욱 작가 (b. 1966)의 <칠하다(Overlaying)>展을 통해 옻칠화 신작 10여점과 설치작품, 영상, 사진 등을 매체로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의 전모를 소개할 예정이다. 전시명 '칠漆 하다'의 의미는 면이 있는 사물에 물감 따위를 '바르다, 도포하다'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더 나아가, 작가가 무수히 반복하는 '시간의 중첩'을 통한 칠을 의미한다.

 

오래된 한국 공예의 역사 속에서, 생활 목가구 및 칠기 제작의 마감도료로 머물렀던 옻칠은 작가의 평면회화 신작들 화면에서 ‘시간의 엄중성’ 을 기록한다. 옻이라는 천연재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간색’ 은 날로 채도가 높아지는데 일반 캔버스뿐 아니라, 작가의 물성에 대한 실험으로 제작된 금속 화판 형태 위에서 적응하며 다양한 색이 중첩된다. 그 중첩된 흔적은 화면 위 양분화된 영역들을 가로지는 경계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무게를 경험하게 한다.

 

1년 내내 30도 이상의 온도와 70% 습도를 유지한, 고온다습한 여름과 같은 실내환경에서 ‘생칠’에서부터 수십 번의 ‘흑칠’을 마치면 꼬박 서너 달이 흐른다.

흑칠 이후, 금속 캔버스에 처음 입힌 삼베를 절개하고 그 면에는 마감칠인 ‘이자지칠’이 올라가면서 화면 상 시간은 정지한다. 이 정지한 시간은 작가 즉,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인 시간을 대변한다면 반대편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영역은 자연적 시간에 의해 소멸로 향하는 시간을 은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품 <무제> 시리즈 3점에서 순도 99.9%의 변치 않는 금박을 사용했다. 시간의 제약 앞에서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상징하는 불변의 금은 옻의 특성 때문에 채도가 높아지고 색이 명료해지는 간색과 나란히 대조법을 이룬다.

서양미술이 작가의 에너지를 외연적으로 표출한다면, 작가는 자기 정화를 위한 수행의 태도라 할 만큼 수십 개의 다른 색깔을 같은 자리에 켜켜이 올림으로써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찾기 위해 색을 채워나간다. 

 

‘시간’은 허명욱의 작업 세계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작가는 서양화의 일반 페인팅 도료가 아닌 한국 '옻칠'을 택하게 된 지난 200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인 시간성’과 작품 제작단계에서 개입하는 ‘자연의 시간성’ 그리고 이들이 함께하는 총체적인 시간성을 어떠한 매체표현이건 간에 작업의 기본재료로 삼았다. 본 전시에서는 평면회화뿐 아니라, 작가가 성찰한 시간성이 하나의 독창적인 회화 표현으로 전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 다른 전시장 층에서는 폭 30 센티미터 가량 되는 옻칠 용기 2백여개가 햇살과 풍화를 거쳐 흥미로운 설치작품을 이룬다. 이와 같은 공간에, 동일한 개수와 형태를 이룬 또 다른 옻칠함 설치물은 반대로 너무나도 환경이 다른 국내외 70여명의 손에 의해 닳고 때가 묻어 돌아와 배치된다. 앞서 자연에 의해 마모된 옻칠함들과 함께 구성되어, 초기 작업부터 지속된 ‘자연에 조응한 조형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시간이 만들어 내는 흔적과 색’을 수집하고 표현하는 허명욱의 이번 신작들은 사물 또는 존재가 겪는 끝과 소멸, 사물의 현상적 측면이 아닌 본질을 보는 시선에 접근하여 결국 '공백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유' 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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