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실: 파고: SOLO EXHIBITION
이은실은 첫 출산의 경험을 작업으로 풀어 내겠다는 계획을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스스로의 삶에 더없이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기에, 얼마간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주제를 마주할 시간 또한 필요했다. 충분한 세월을 지나온 지금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그 결과물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이은실의 신작은 출산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경유하는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겪어내는 감정의 높낮이를 보다 섬세하게 포착하는 시도이다. 개인이 삶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변곡점을 파도의 높이에 비유하는 전시명 아래, 동양화 기법으로 제작한 총 10점의 신작 회화를 1층과 지하 1층에서 조명한다.
출산을 회고하는 화면의 빛깔은 찬란하다. 각각의 장면들은 분출하는 화산이나 태풍 속 파도, 자욱한 안개와 같이 경이롭고도 위협적인 자연 현상을 연상시킨다. 태아의 탄생은 한편으로 그것을 잉태한 모체의 분열을 의미한다. 하나의 신체 내부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태동하여 마침내 분리되는 물리적 과정뿐만 아니라, 자아의 일부를 육아에 분배하는 정신적 변화에 있어서도 그렇다. 출산은 생성과 파열, 주체의 해체와 존재의 확장을 양가적으로 의미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부단히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인 한편 개인의 삶 속에서 주요한 분기점을 마련하는 사건이자 때로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여겨지는 실천이다. 이은실은 출산의 과정에 내재한 고통과 환희, 절망과 해방 등 입체적인 감정을 회화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가장 개인적인 내면세계로부터 길어 올린 감각과 정서, 환영과 기억들을 가장 보편적인 자연의 풍경 위에 중첩하는 방식으로서다. 그럼으로써 주제의 방점은 분만의 주체인 ‘여성’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모든 생명을 배태하는 ‘자연’으로 확장된다. 출산을 경유하는 연약한 인간의 고통은 거대한 자연의 풍경으로 치환됨으로써 순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 세대가 지나고서야 타인 앞에 꺼내 놓은 작가 자신의 기억은 이제 타인의 신체적, 심리적 외상에 공명하는 매개체로 탈바꿈한다.
이은실은 1983년 출생으로 200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후 2014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울, 한국, 2025), No.9 코크 스트리트(런던, 영국, 2024), P21(서울, 한국, 2021), 유아트스페이스(서울, 한국, 2019), 두산갤러리 뉴욕(뉴욕, 미국, 2016), 창강빌딩 1003호(서울, 한국, 2013),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서울, 한국, 2010), 대안공간 풀(서울, 한국, 200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7년 《제29회 중앙미술대전》,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2008》, 2014년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2014》 등 주요 전시 참여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에는 제19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하여 주목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송은, 아라리오컬렉션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