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망설임

13 April 2021 - 7 June 2022 Cheonan
Press release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2021년 4월 13일부터 2022년 5월 8일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한국 작가 13명으로 구성된 그룹전 <13번째 망설임(The 13th Hesitatio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의 최대 경제성장기인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ž중반에 태어난 세대가 가장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을 법한 나이인 ‘불혹(不惑)’을 전후하여 맞이한 현실이 여전히 불안함과 망설임 속에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본 전시는 30-40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작가들의 눈으로 본 현실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실패에 대해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나들던 시기에 태어난 이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랐다. 다양한 외래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고, 대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개인 컴퓨터 및 인터넷 보급과 함께 통신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세대로 다양한 서브 컬쳐의 주 소비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40세를 전후한 나이에 맞이하게 된 현실은 그들의 부모 세대가 지나온 그것과 사뭇 다르다. 마이너스 성장시대, 최악의 취업난, 부동산 가격 급등, 국제적 팬데믹까지 온갖 사회적 악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졸업, 취업, 결혼, 주택구입, 출산, 노후준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도 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베이비 붐 세대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삶의 터전 위에서 2021년의 불혹은 청년도 중년도 아닌 비좁은 중간지대에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듯 보인다.

 

기억의 편린이나 일상의 상징적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심리 풍경화로 삶의 곳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진실의 구조를 파헤치는 이진주(b.1980)와 보통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겪어나가는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의 풍경들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역동적인 파노라마로 펼쳐내는 좌혜선(b.1984), 개개인의 생각과 노동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논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주목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들을 유쾌한 영상이나 사진, 퍼포먼스 등으로 풀어내는 백현주(b.1984), 이기적인 합리성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사회와 현대 인류의 끝없는 불안함에 관심을 가지고, 유토피아 혹은 천국으로 대변되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우화적으로 위트 있게 그려내는 장종완(b.1983)의 작품들을 통해 가족, 동료, 지역사회 공동체, 나아가 인류 전체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관계들과 그에 따른 고민, 갈등, 해소의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외로움과 불안, 죽음과 공포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검은색 필치로 쏟아내는 심래정(b.1983), 사회적으로 외면 받아온 금기와 깊숙이 내재된 욕망을 한국화의 전통적인 소재들을 이용해 불편하리만큼 세밀하게 묘사해내는 이은실(b.1983), 미디어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인터넷에서 수집한 포르노를 편집한 영상과 성적인 코드를 소재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집단적 대립화 양상을 꼬집는 인세인 박(b.1980)의 작품들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인 인간의 원초적 고통과 쾌락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거부하고 여전히 고루한 가치에 집착하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한다.

 

하위문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대상과 배경, 그리고 그에 대한 애정을 건조하게 해체해내는 돈선필(b.1984), 범람하는 SNS 이미지를 캡쳐, 크롭, 편집하여 사각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재생산 해내는 노상호(b.1986)의 작품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전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조각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 양감, 질감 등의 일부를 극대화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익숙하지만 낯선, 의식과 무의식에 경계에 선 기묘한 상황과 마주하도록 만드는 김인배(b.1979), 회화가 가진 순수한 조형 요소인 선, 면, 색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시키며 불안을 내재한 현대인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담아내는 구지윤(b.1982), 그리는 행위와 실재하는 대상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관심을 바탕으로 콜라주한 이미지들을 3차원 모형으로 제작한 뒤, 이를 다시 손이나 발, 붓 등을 이용해 평면에 구현하는 회화적 실험을 시도하는 안지산(b.1979),캔버스 위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고 회화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전개하는 백경호(b.1984)의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급격하게 변모하는 오늘날 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 매체를 통해 예술의 순수성을 탐구해나가는 작가들의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가 본다.

 

전시제목 ‘13번째 망설임’은 장종완 작가의 동명의 작품에서 가져왔다. 당근을 눈 앞에 두고 망설이는 당나귀 머리 위로, 13이라는 숫자가 기수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이 무인도에 표류할 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날짜를 세던 원시적인 기록 방식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실패할 때마다 하나씩 선을 그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의 14번째 시도는 성공했을지,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도는 과연 의미 있는지 같은 물음은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짊어진 공통의 질문이 아닐까. 세상 풍파에 갈팡질팡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지나감에도 여전히 망설이고 흔들리는 이 세대는, 망설임과 설레임 사이에서 그렇게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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